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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문턱, 디지털 너머의 오프라인 리터러시

저녁 식사 후, 십 대 자녀가 태블릿으로 해외 봉사 활동 영상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화면 속 또래 아이들이 낡은 노트북 한 대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녀는 “노트북만 있으면 다 해결될 텐데”라는 짧은 말을 남겼다.

저녁 식사 후, 십 대 자녀가 태블릿으로 해외 봉사 활동 영상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화면 속 또래 아이들이 낡은 노트북 한 대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녀는 “노트북만 있으면 다 해결될 텐데”라는 짧은 말을 남겼다. 그 순간, 수십 년간 국제개발협력의 흐름을 지켜봐 온 한 사람으로서 이내 고개가 저어졌다. 화면 속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 디지털 기기였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종이책을 읽고 필기를 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기초적인 오프라인 리터러시였다.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수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왔지만, 정작 그 기반이 되는 전통적 문해력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약했기 때문이다.

국제개발협력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 흐름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세기 중반,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원조는 주로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집중되었다. 댐을 짓고, 도로를 깔고, 공장을 세우는 물리적 자본이 곧 발전의 지름길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단순한 경제 성장만으로는 빈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깨달음이 확산되었다. 건강, 교육, 거버넌스 등 인간의 기본적인 역량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인 발전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교육은 단순한 권리가 아닌, 경제 사회적 발전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재평가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최근의 교육 개발 프로젝트는 디지털 기기 보급에 몰두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원격 수업 플랫폼을 만들고, 태블릿을 배포하고,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련의 노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물론 이 모든 접근이 훌륭한 방향성이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수많은 개발도상국 아동, 특히 농촌 지역의 여학생과 취약 계층 아동은 여전히 기초적인 읽기와 쓰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글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수백만 화소의 화면과 빠른 인터넷 속도는 무의미하다. 디지털 교육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려면 필연적으로 오프라인 리터러시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의 교육 접근성 향상을 위한 협력 방안은 즉흥적인 대응이 아닌 종합적인 설계를 요구한다. 과거의 프로젝트들이 자주 간과했던 부분은 가정 환경이다. 부모가 문해력이 낮은 가정에서 태어난 아동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불평등한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지원은 교실 내부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성인 문해 교육과 연계된 세대 간 학습 프로그램, 현지 언어로 제작된 그림책과 읽기 자료의 보급, 지역 도서관을 거점으로 한 독서 캠페인 등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기술 지원이라는 이름의 하드웨어 보급 이전에, 사람의 손끝에서 종이를 넘기는 경험이 먼저 축적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큰 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단순히 양적 지표를 넘어 질적 성장을 강조한다. 이는 국제기구의 빈곤 퇴치 프로젝트와도 맞닿아 있는데,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기초 교육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교육적 접근이 다른 개발 과제와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 전략을 구사할 때, 농민들이 농약 사용법이나 작물 관리 지침을 이해하려면 우선 읽고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를 위한 개발 정책도, 금융 서비스를 활용하고 계약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해력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결국 디지털 기기의 활용 능력은 이러한 오프라인 리터러시가 충분히 다져진 후에 의미를 갖는 최상위 개념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개발 원조 동향은 화려한 기술 시연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듯하다. 교육 데이터를 수집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나 화상 통신을 활용한 원격 멘토링은 분명 혁신적이며, 청년 인재 양성을 위한 국제개발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을 따라가고, 정보를 해석하고, 논리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기초 인지 능력이 결여된 상태라면, 이는 결국 특정 엘리트 계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결과를 낳는다. 교육 접근성의 향상은 그 혜택이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도달할 때 의미가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와 개발 기관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 전에 먼저 현지의 오프라인 리터러시가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진단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데 투자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정리하면, 국제개발협력과 지속가능발전의 역사는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의 역량 강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의 하드웨어 중심 지원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막연한 디지털 낙관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바로 전통적 문해력과 수리력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이다. 자녀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세계 어느 부모나 다르지 않다. 지구 반대편 아이들이 노트북을 받기 전에, 먼저 형형색색의 그림책과 선명한 활자가 인쇄된 종이책을 손에 쥐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국제 개발의 시작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술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보이지 않는 문턱이 조금씩 낮아질 것이다.